무더운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는 요사이, 오늘은 모처럼 비가 내려 선선한 바람에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만큼은 여유가 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살아오면서 편하게 살지언정 쉽게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몇 배나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미 제 군생활의 10%(시간상)는 지나갔고, 군대와 저는 벌써 서로 화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힘겨운 하루의 끝에서 침상에 누워 잠들기 직전의 평안함과, 보초 근무 도중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는 감상. 그리고 당신을 떠올려보며 혼자 웃음지은 채로 편지를 쓰는 일도 이제는 익숙해져갑니다. 동일한 사이클 속에서 집단 속의 최하층 계급으로 살아본다는 것. 이곳이 아니면 이토록 철저하게, 절실하게 '체험'해보기 어려울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100일 휴가가 이제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면서 조금씩 정신이 풀려가기도 합니다. 입대 후 하루도 마음놓고 쉬어 본 적이 없어 지금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걷잡을 수 없이 약해져버리지 않을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달리는 사람은 잠들지 않습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여정, 지치지 않기를, 잠들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눈 뜨고 있는 인간으로 남ㅇ르 수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이곳은 저와 여러분이 처음 생각했던 곳과는 많이 다른 곳입니다. 여기서 새로이 발견한 저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할 줄 알았던' 것들을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나약한 자도, 괴물도 아닌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편지를 마치는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새벽 4시. 아직 세계는 고요한 어둠에 잠겨있습니다. 편안히 주무십시오. 꿈꾸기 좋은 시간이니까. 저는 깨어있는 채로 당신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2003년 5월 30일
adore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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